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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파리의 심판을 모티프로 생성한 이미지. 미드저니
1976년 5월 24일 파리
프랑스 파리 인터콘티넨털호텔에서 11명의 와인 평론가들이 탁자에 줄지어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와인을 시음합니다. 와인잔에 담긴 와인을 제외하면 탁자 위에는 그 와인이 무엇인지 유추할 수 있는 것이 일절 존재하지 않는 블라인드 테이스팅(Blind tasting)이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각각 10개씩 총 20개의 화이트와 레드 와인을 시음한 뒤 각각 20점 만점을 기준으로 점수를 매겨 제출했습니다. 주최 측은 그 점수를 집계해 최하위 화이트 와인부 학자금 저금리 전환 방법 터 이름과 빈티지를 발표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여느 와인 블라인드 테이스팅 행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주최 측이 최하위 와인부터 발표하기 시작하자, 장내 혼란은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닫게 됩니다.
기록에 따르면, 오전 테이스팅은 화이트 와인이었습니다. 최종 1위로 선정된 것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샤토 몬텔레나(Chateau M 단리 월복리 ontelena) 샤도네 1973 빈티지'였습니다. 이름이 불리자 일부 심사위원들이 "이 와인은 틀림없이 부르고뉴 와인이다. 주최 측이 와인을 준비하며 실수한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재테이스팅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예상 외의 화이트 와인 심사 결과로 인해 극도의 긴장감 속에 치러진 오후 레드 와인 테이스팅 결과는 더 심각했습니다.
환승론대출주최 측으로부터 최종 1위에 "미국 캘리포니아 스택스립 와인 셀라(Stag's Leap Wine Cellars), 까베르네 소비뇽 1973 빈티지"가 호명되자 장내는 몇 초간 짧은 침묵이 이어졌고, 이어 심사에 참가한 프랑스 와인 전문가들의 '그럴 리가 없다'는 격앙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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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바로 1976년 벌어진 테이스팅 이벤트, '파리의 심판(Judgment of Paris)' 이야기입니다. 애초 지켜보는 눈도 별로 없고, 테이스팅하는 와인도 화이트와 레드 각각 10종씩 20종에 불과했던 평범한 와인 테이스팅 행사로 보였던 이날 이벤트는 심사 결과 발표와 함께 20세기 와인 업계 역사상 부천 개인돈 최고의 이벤트로 돌변합니다.
자타공인 세계 최고였던 프랑스 와인이 당시만 하더라도 변방, 이제 막 와인 산업을 시작하는 애송이 수준이었던 뉴월드(여기서는 미국을 지칭) 와인 앞에 무릎을 꿇은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와인의 세계에서 공식처럼 여겨지던 '프랑스 와인은 세계 제일'이라는 고정관념이 산산이 부서지면서 와인 산업이 한 차례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재밌는 것은 이날 행사를 취재한 유일한 기자는 미국 타임(Time)지의 파리 특파원이었던 조지 태버(George Taber)입니다. 프랑스와 미국의 와인을 비교한다는 행사를 시덥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고 아무도 취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기사와 기록이 없었다면 파리의 심판은 역사적으로 주목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사건은 프랑스인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혔습니다. 나중에 언론 보도를 접한 성난 군중들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 심사위원들은 "캘리포니아 와인이 너무 프랑스 와인을 따라하기 때문에 이것은 잘못된 테스트이다" "5~10년이 지나 와인들이 더 숙성되었을 때라면 프랑스 레드 와인들이 훨씬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고 확신한다" 따위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상황을 겨우 모면했다고 합니다.
2024년 10월 4일 서울
서울 한강에서도 파리의 심판을 모티브로 한 행사가 펼쳐졌습니다. 국내 주요 와인 수입사들이 출품한 와인을 소믈리에와 와인 전문가 등이 완전히 블라인드로 시음하고 평가하는 자리였는데, 다른 주류에 비해 아직 소수에 불과한 우리 와인 시장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활성화를 돕자는 행사의 취지를 고려해 기자도 심사위원으로 참석했습니다.
주최 측은 고물가 상황과 와인 시장 활성화라는 취지를 고려해 와인의 소비자가를 5만원 내외로 제한했습니다. 와인을 출품한 수입사는 △국순당 △금양인터내셔날 △나라셀라 △롯데칠성음료 △신동와인 △신세계L&B △아영FBC △CSR 등 총 8곳이었습니다. 이들은 아직 국내 시장에 선보이지 않은 보석 같은 스파클링과 레드 와인 70여 종을 출품했습니다. 스파클링과 레드 부문으로 나눠서 부문별 12개의 와인을 2시간여 동안 블라인드 테이스팅했는데 재밌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내로라하는 전문가이자 소믈리에들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한 캐릭터를 가진 와인이 1위로 꼽혔기 때문입니다.
영예의 스파클링 와인 1위는 호주에서 생산하는 브라운브라더스의 프리미엄 뀌베 NV가 차지했습니다. 브라운브라더스는 130년 가까이 호주에 터를 잡고 와인을 만들어온 와이너리입니다.
프랑스 상파뉴 지역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에만 붙일 수 있는 샴페인이라는 분류명을 쓸 수는 없지만, 샴페인의 특성을 똑같이 발현해낸 고급 와인이었습니다.
2020년과 2022년 두 번이나 한국국가대표 소믈리에 대회 왕중왕전에서 1등을 했던 안중민 소믈리에는 심사위원 중 가장 높은 94점을 주기도 했는데요. 안 소믈리에는 "부드러운 질감과 신선한 과실미, 브리오슈 풍미들이 잘 균형 잡힌 와인"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레드 와인 부문 1위는 미국에서 생산하는 본 테라 에스테이트 콜렉션 까베르네 소비뇽이 거머쥐었습니다. 미국 까베르네 소비뇽에 기대하는 진하고 쨍한 과실미와 묵직한 오크향 대신, 붉은 과실의 좋은 산도와 허브류의 상쾌함, 절제된 오크 사용을 통한 제한적인 바닐라 뉘앙스가 느껴졌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은 대부분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와인일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정체가 밝혀지고 난 후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도 '세계관이 무너졌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놀라움을 준 와인입니다. 유튜버 공격수쉐프로 활동하는 박민혁 쉐프는 "출시하면 매일 마실 와인"이라며 이날 심사위원 중 가장 높은 점수인 95점을 줬는데요.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을 그린 아기 타다시 남매 중 누나인 기바야시 유코 작가는 "많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프리 사이즈의 트렌디한 벨벳 재킷이 떠오르는 와인"이라는 심사평을 남겼습니다.
이날 스파클링과 레드 각 부문에서 1등을 기록한 와인은 연말연시 전국 롯데백화점에서 판매될 예정입니다. 두 와인 모두 회부터 각종 육전, 양념불고기에 이르기까지 한식과의 페어링에서도 훌륭한 맛이 기대됩니다. 침체한 국내 와인시장의 대중화라는 취지에 맞춰 거품을 뺐고, 국내 최고의 와인 전문가들에게 인증 받은 와인인 만큼 가정에서 연말연시의 대미를 장식하는 자리에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파리의 심판 이후
사람은 누구나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이상 아무리 공정하려고 해도 일정 부분은 기존의 평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주변 사람들의 평가, 예전부터 내려오는 명성, 막연한 추측 등 우리가 무엇인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엔 이미 너무 많은 데이터가 산재해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와인의 세계에도 편견과 선입견이 존재합니다. 인류와 함께할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다보니 일부 유럽의 전통 와이너리에서 수백년간 켜켜이 쌓인 평가와 그렇게 쌓아올린 유물들로 만들어낸 이미지는 지금처럼 각종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도 무시하지 못할 영향력을 행사하곤 합니다.
실제로 프랑스 와인은 아주 오랜 기간 좋은 와인의 대명사로 불렸습니다. 정말 오만한 말이지만 '프랑스 와인이 아닌 와인은 와인이 아니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와인의 세계에서 절대적인 위치에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이런 기조는 유지됩니다. 도대체 누가 DRC(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와 보르도의 5대 샤토를 저평가할까요? 상상도 하기 힘든 일입니다.
파리의 심판은 당시 프랑스에는 불행한 일이었겠습니다만, 이 사건 덕분에 와인 산업은 한 차례 큰 발전을 이뤄냅니다. 모든 와인이 프랑스 와인의 기조를 따라갈 필요가 없어지고, 프랑스 와인만이 최고로 평가되던 시대도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특히 후발주자였던 뉴월드 와인 업계가 추구하던 과학기술을 활용한 지속적인 품질개량 노력이 꽃을 피우게 됩니다.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는 파리의 심판을 "프랑스 와인이 우월하다는 신화를 깨고 와인 세계의 민주화를 이뤄낸, 와인 역사상 중대한 분기점"이라고 표현합니다. 별것 아닌 것 같은 그 발칙한 도발과 움직임이 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꾸면서 또 다른 새로운 산업과 가능성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편견과 선입견의 문제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진행형입니다. 전 인류가 가장 광범위하게 즐기는 술인데도 우리나라 안에서만큼은 '비싸기만 한 술', '허세와 위신을 위한 술'이라는 편견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편견과 우상은 언젠가는 깨지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이번 연말연시가 좋은 와인 한잔으로 그 편견을 깨는 절호의 기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와인은 시간이 빚어내는 술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와인의 역사도 시작됐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흥미로운 와인 이야기를 재밌고 맛있게 풀어드립니다.
[전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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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4-12-30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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